영화 덕혜옹주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영화란점 충분히 이해하고 이야기 흐름이나 스토리의 완결성을 가지기 위해 사실과 엇나갈수 있다는점 충분히 이해하고 봅니다. 뭐라도 하나 사소하게 사실과 다른점이나 고증이 잘못된점 없나 돋보기 들이대며 보고싶지는 않습니다. 길어야 보통 두시간 정도로 압축된 영화한편 보면서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
이인화의 영원한제국이라는 소설로 쓰이고 좋아하는 배우인 안성기가 주연으로 영화도 만들어질만큼의 흥미로운 이야기였던 부분인 정조와 왕을 우습게 여기는게아닐까 할정도로 심하게 대립각을 세우던 심환지등 노론 신하들이 사실은 최근 발굴된 어찰첩에 따르면 상당한 반전으로 정조의 명령에 따른 정치행위였다던가 등등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던 것들도 가끔은 반증이 나올때도 있는법이고...
영화란게 제한된 시간내에 지루하지않게 함축적으로 묘사해야될 필요도 있는데 예를들면 총사령관격의 최고 지휘권을 가진 장수들이나 왕이 전쟁때마다 최전방 선봉에 서서 칼싸움을 나올때 마다 하는건 솔직히 이야기의 흐름을 끌고가기위한 시각적 방법이기도 하고 사실에 대한 각인을 시키기위한 장치이기도합니다. 가끔은 사실관계를 비틀거나 흔히 볼수있는 방법으로 그럴듯한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알려진 팩트를 넘어서는 과도한 해석이나 추측은 역사라는 주제를 가져간 부분을 되새겨보게 합니다. 상업영화라 할지라도 사실관계의 왜곡은 짚고넘어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영화 덕혜옹주의 가장 큰 사실관계와 어긋난 부분은 고종과 영친왕 그리고 덕혜옹주가 독립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설정입니다. 논란이 있을수 있는 고종의 독살설은 덕혜를 비롯 많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었던 부분이기에 크게 상관이 없지만 고종은 망명의지보다 마음한구석에 한일병합이 되더라도 황실이 어떤식으로던 기득권이 보전되길 원했었고 을사늑약 당시의 한규설을 주축으로한 내각은 정무능력보다는 고종에 대해 배반하지 않을 즉 왕에게 고분고분한 성향의 인물들로 채워져있다고 볼수있습니다. 그 이유는 김옥균의 갑신정변이후인데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대신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서는 본인의 왕권수호의 중요성을 더욱 느끼게되는 고종입니다. 몇번의 죽을고비를 넘긴이후였기에 왕마저도 바꿀수 있는 성향의 인물 즉 자신의 왕권에 위협적인 인물들은 곁에두기 싫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능력보다는 우선 본인의 의중을 파악하고 행동하는 인물을 선호했다고 할수있습니다.
여우같은 이완용은 고종의 이런 심리를 크게 이용했던 인물입니다. 황실을 일단 명맥을 유지시키고 후일을 기약하자는 마음에 없는 감언이설을 내세우던 인물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약속을 받아내 고종 압박하는 동시에 설득시키려 했었습니다. 고종은 물론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헤이그 밀사를 통해 국제사회에 호소하거나 헐버트를 이용해 미국을 움직이려했지만(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미국과 일본은 서로 간섭안하기로 이미 결론을 내린상태) 결론적으로 국제정세의 냉혹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시도였습니다. 고종은 독립운동이 왕실의 기득권 유지에 필요한 경우라면 적극적으로 실행했겠지만 당시 정황은 그럴만한 상황이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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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실 가운데 일제에 대해 항거했다고 할수있는건 의친왕 이강정도를 꼽을수 있습니다. 영화속에 의친왕의 아들들이 나오긴하지만 해방후에 일본으로 귀화한 첫째는 영화속에서처럼 당연히 반대했고 흥선대원군의 조카인 이준용의 양자로 들어가 일본 황적에 오른 둘째 이우는 일본에 매우 반항적이긴 했지만 개인적인 차원이 더욱 강했습니다. 영친왕은 속내까지 알수는 없지만 워낙 어릴때 이토히로부미 손에 이끌려 멘토삼아 자랐고 황태자비감으로 거론되었었던 이방자여사와 결혼한데다 군장성의 직위를 가진 황족으로 상당한 대접을 일본으로부터 받았기에(당시에 유럽순방을 떠날정도) 독립운동에 관한 의지가 있기 힘든데다 오히려 임시정부의 납치계획이 있었을 정도이고 추후라도 독립운동에 대해 실제적으로 알려진 사실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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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는 친일파 한창수의 주선으로 일본으로 떠나고 19세에 대마도 귀족인 소다케유키와 원치않는 결혼까지 하게됩니다. 알려진것처럼 조현병이 심해진 상태였기에 비록 어릴때는 명민했다고 하지만 일본으로 떠난후에는 불안감속에서 생겨난 정신적인 질환입니다. 불행한 개인사이기에 영화를 보기전에는 조선에 있을때 원래 정혼자였던 이장한과의 설정이라고 생각해 몇가지 에피소드로 스쳐지나는 부분인줄 알았지만 끝까지 영화 전체를 일관되게 덕혜 개인보다는 독립운동과 연관지어지는 부분이기에 크게 묘사되었고 항일운동이 도드라지는건 흐름상 상관없지만 덕혜옹주와 직접관련이 있었다는 부분은 불편하기도.. 불행한 개인사에 대한 조명은 예상보다 적게나와 실제와 다른부분이 너무 많이 차지했기 때문.. 나중에 국내로 덕혜옹주를 귀국하게 만든건 이장한(김장한)의 형인 김을한이지만 영화적인 설정은 무리가 없는 부분..
영화는 영화일뿐이긴하지만 사실과 많이 다르게 알려지는 것은 경계해야할 부분.. 이부분만 빼고보면 별점 3개에서 3개반정도 줄수있는 영화. 일단 손예진과 박해일의 연기는 볼만했고 실제와 다른 항일운동 부분만 뺀다면 스토리도 괜찮았던데다... 경운궁(후일 덕수궁) 석조전에서 조선 황실의 장면등 초반에 익숙한 공간이 보였기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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