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할아버지란 친근한 명칭으로 다가오는 국조.. 일제에의해 실제가아닌 신화로 전락했고 최근 일명 환빠 혹은 유사역사학으로 불리는 일부 재야사가들에의해 고대사가 판타지 소설수준으로 난도질되면서 이전보다 관심이 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단군릉이 발견되었다면 고구려시대 복원된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알길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무살무렵인 80년대말에서 90년대초까지 임승국이 저술한 한단고기나 규원사화 지금은 증산도의 상생방송에서도 볼수있는 당시 한신대 교수인 김상일의 한철학과 일련의 저술들을 읽으며(이책들은 아직도 집안 어딘가에 굴러다니는중일텐데) 단단히 빠져들었었고 이런 무시무시한 고대사의 비밀들이 식민사학에 물든 강단사학자들이 기득권을 위해 애써 부정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었습니다. 이런 전세계적 비밀을 혼자만 알고있을수는 없어 다니던 도서실이며 이곳저곳에 수메르 문명이며 가림토 문자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들의 요약본을 메모해두고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웹은 고사하고 PC통신도 전산관련 혹은 매니아적 전문가들의 영역이던 당시였기에... 매우 뿌듯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 날리며 헛웃음 나오는..
물론 우리나라의 국조는 단군으로 설정하는게 가장 타당합니다.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단군의 이야기는 당시의 설화적 설정을 빌어서 이야기했을뿐이지 없는 사실을 꾸며댄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전세계적으로 순혈주의나 순수 민족등의 개념이 이전 시대보다 더욱 무뎌지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를 영토의 넓이만 가지고 재단하는 것만큼 단편적인 것이 없습니다.
현재 단군과 관련된 유적지는 우선적으로 단군에 대한 숭배가 높았던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갈수있고 고려의 임시수도 역할을 자주하던 강화도 마니산의 첨성단을 들수있습니다. 올 여름에 강화도 답사를 하면서 원래의 강화도는 여러개의 섬이었지만 고려시대이후 꾸준히 간척사업을 하면서 현재와 같은 크기의 섬이 되었다고합니다. 새롭게 알게된 사실로 마니산이 있던 곳은 현재 강화대교와 이어진 곳과는 분리되었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교동도까지 다리가 연결되어있고 석모도까지 연결되게되면 강화도 여행이 한결 수월해질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배를타는 약간의 즐거움은..
이외에 사직단뒤에있는 백악전이라 불리는 단군성전을 들수있습니다. 서울성곽 인왕산 코스 답사할때 사직단과 더불어 잠시 들를수 있는 코스입니다. 개천절은 나철등이 조직한 대종교에서 제정한 날로 당시에 민족정신을 되살리자는 의미도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한창 개천절 행사가 열릴것으로 보입니다.
이상으로 고대사는 사료가 너무 없고 이현령비현령식의 끌어 맞추기가 손쉬워 이야기 하는데 한계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