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놀이터/근대 (3) 썸네일형 리스트형 정동 아관파천 당시 고종의길과 러시아 공사관 복원 - 덕수궁 선원전 일원 명성황후 시해이후 일본등 외세의 위협에 고종은 민비에 의해 쫓겨났던 엄상궁(후일 순헌황귀비)을 다시 불렀습니다. 그녀의 기지로 경복궁을 탈출했고 친러파인 이범진등의 도움으로 순종과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합니다. 아관파천으로 불리는 사건으로 당시 이곳 경운궁은 러시아 공사관과 지하에 연결된 곳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경운궁(덕수궁의 옛이름)은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고 볼수있는 경희궁과 다리를 놓아 연결되어있었습니다. 즉 경운궁의 영역이 지금의 서울역사박물관 바로 밑에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아관파천이후 독살을 우려해 통조림만 먹던 고종은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나라에 이권만 계속 나눠주었고 이후 경운궁으로 옮겨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제자리를 찾고 싶어 했지만 이미 대세를 거스를수 없었던 상태... 이.. [도서평] 명성황후 최후의 날 - 사바찐이 목격한 을미사변 그날 명성태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그녀는 1985년 10월 9일 황후로서 자신의 나라 자신의 처소에서 외국 자객들의 칼에 허망하게 죽임을 당하고 불태워져 사라졌습니다민비라고도 부르는 여인은 국가의 황후였고 대단한 권력자였던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도 겨룰 정도의 야심과 지략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원래 대원군은 외척의 발호를 걱정해 8살때 양친을 여읜 민치록의 딸을 며느리도 받아들이지만 오히려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인셈 어릴때부터 독서 특히 춘추와 춘추좌씨전같은 역사서를 즐겨 읽었다던 명성황후 민자영대원군과의 권력싸움에서 승리하고 조언자 역할을하며 고종과 매일밤 행사에다 관련인물들이나 무속인들에게 후하게 내주면서 국고를 많이 탕진하기도했기에 우리는 이시대를 말아먹은 사람들로 흥선대원군 고종 민비를.. 가쓰라 태프트 밀약과 망국을 길을 가게되는 대한제국 1905년 7월 29일 가쓰라 태프트 밀약 한마디로 정리하면 미국은 필리핀에 대한 영향권을 가지고 당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하며 기고만장하던 일본은 조선에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밀약.. 즉 공식화된 선언은 아니었지만 1924년 미국의 타일러 데넷에 의해 밝혀지면서 나온것으로 이로인해 일본은 을사늑약을 통해 조선을 병탄하고 이후 미국으로서는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할수 있고 경제적인 이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것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독특한 문명관을 가졌는데 다위니즘 신봉자로 국제간에도 우열론적 시각으로 약한 국가는 강한 국가의 통제하에 놓이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해지는데 눈썰미가 있고 영화를 보신분이라면 박물관이 살아있다에 나온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했던 그인물.. 미국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 이전 1 다음